[이영주 시인에게 묻다] 항상 시에 대해 궁금했지만 차마 시인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 - 1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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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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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스토리

시 생각만 하면 온종일 마음이 설레요


이영주(시인)


생활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생활 바깥에 무엇이 있을까? 이런 호기심은 일종의 한가한 몽상의 세계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활 바깥에 대한 궁금증을 버릴 수가 없다. 생활이 주는 헐떡임, 생활이 억누르는 내면의 언어, 생활이 가둬버린 상상의 영역…… 생활 안에서의 모험은 가능한가.

내가 속해 있는 생활의 영역에서 나만 소외되고 생활만 남아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생활에서,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나를 복원시킬 수 있는가. 많은 의문들을 뒤로 미뤄두고, 생활, 이라는 이상한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려 발버둥 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내미는 그리움. 무엇이 대한 그리움인지 알 수 없어서 더욱 긴장되는 그것. 아마도 안쪽에 숨겨진, 한 번도 들이마시거나 흘려내지 못한 슬픈 호흡일까.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비명, 울음들. 말하고 싶어지는 비밀들이 흘러나오는 자리. 이것을 시의 자리라고 말해도 될까. 그 호흡을 돌보고 나누는 일을.

가까운 이에게도 말한 적 없어서 오히려 소중한 나만의 정서, 감성, 내면의 무늬들을 말하려고 마음먹자 설레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을 쏟아내어도 될까. 어쩐지 쑥스럽고 민망하고 오해를 살 것만 같은 내 마음의 무늬들을?

이것을 시라는 옷을 입고 말해보면 어떨까.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에 가까운 이 깊은 마음들을 시가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나를 시 안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시는 진실을 담는 그릇이고, 무엇이든 그 안에 담을 수 있다. 그래서, 한 번도 표출해보지 못했던 마음의 솔직한 표정들을 꺼내볼 수 있다면!

내 안에 숨겨진 진짜 나의 모습이 시를 통해 너에게 가닿으려고 한다. 그것만 생각하면……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뛴다. 시는 너에게 건네는 연애편지 같은 것. 특정한 ‘너’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특정하지 않은, 내가 오래 전부터 그리워했던 신비로운 대상인 ‘너’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내 오랜 상상이 만들어낸 비밀스러운 너. 그런 너에게 내 마음의 무늬들을 꾹꾹 눌러쓰고 밀봉하여 보내는 나만의 전설 같은 것. 시는 나의 마음을 담아내면서, 너의 마음에 가닿으려 하는, 사랑의 행위와 같다. 시를 쓰는 순간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신비로운 너를 만나는 설렘도 시작된다.

그러므로 누구든 이 자리에서는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 기쁘다고 말해도 된다. 슬프다고 말해도 된다. 마음에는 권력차가 없다. 마음을 드러내는 세계는 앞선 자도, 뒤선 자도 없다. 시는 그렇다. 기쁨에는 같이 웃고, 슬픔에는 같이 울 준비만이 필요하다.

멀리, 아주 멀리 돌아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돌고 돌아서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해.






이영주 (시인)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이 있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졸업. 한예종, 명지대, 경희대 등에서 시창작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현재 불편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한겨레 글터 시창작 강의에서 <세계의 문학> 강지혜 시인, 문체강화 수업에서 <심훈 문학상> 이태승 소설가, 명지대 구현우 시인, 한예종 김정진 시인 등등 이영주와 인연이 닿은 시인, 소설가들이 문단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