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의 글을 쓰며 산다는 것] "작가님, 쉬는 시간에는 뭐 하세요?"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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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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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스토리



선생님, 쉬는 시간에는 뭐 하세요?”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책 보죠. 글 써야 하니까.” 하면 보통은 하루 종일 책만 보지는 않으실 거 아녜요. 책 안 볼 때는 뭐 하세요?” 하는 식으로 다시 질문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사생활이 궁금해서? 그건 아닌 거 같다. 얘기를 하다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질문의 요지는 대개 이것이다. ‘작가들이 책 보고,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하루 종일 책만 보거나 글만 쓰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쉬는 시간이 있을 텐데, 그 시간 동안 뭘 하길래 그렇게 글을 쓰나?’ 말하자면 예상되는 생활 외의 여백, 거기에도 글쓰기의 일정한 비밀이 숨어있으리라 기대하고 묻는 것이다.

작가라고 해서 특별한 여가생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자 취미에 따라 등산 좋아하는 사람은 등산 가고, 낚시 좋아하는 사람은 낚시가고, 여행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가고 한다. 나의 경우는 딱히 취미랄 것이 별로 없어서 그냥 집 주변에서 자전거나 타고, 턱걸이나 하고, 가벼운 등산도 한다. 텔레비전은 안 보지만, 인터넷으로 신문도 많이 보고, 영화도 본다. 거기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말하면, “심심하시겠어요.” 하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심심하지 않다. 아니, 심심할 때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심심하지 않다. 무엇을 하건 그렇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라면 차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행해지는 노동은 일과 여가가 구분된다. 일은 일이고, 여가는 여가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지 않다. 작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 일과 여가가 구분되지 않는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홀(James N. Hall)은 이런 말을 했다. “빈둥거리는 것은 작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생산적인 부분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버튼 라스코(Burton Rascoe)작가의 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작가가 창밖을 응시하고 있을 때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추리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는 어떤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쓸 책을 궁리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설거지할 때다.”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작가들은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전적으로 맞는 얘기다. 작가는 생각하는 것이 일이다. 생각하는 한, 작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비가시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겉으로 봐서 쉬고 있지만, 그가 상념에 빠져 있다면 그는 쉬는 것이 아니라 잔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일과 여가가 구분되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다. 직장인이 퇴근 후에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회사의 잡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을 좋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일은 그렇지 않다. ‘책상 앞을 떠났으니, 이제 생각하지 말고 쉬어야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도리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 오히려 쉴 때 이런 저런 생각이 더 잘 나는 경우도 많다.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묘한 것이 있어서, ‘생각 좀 해야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산책이나 운동, 청소나 샤워를 할 때 잘 떠오른다. 정신적 긴장을 놓을 때, 일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워진 두뇌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생각의 바다를 유영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을 해낸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노트북을 덮고 잠시 걷는다. 지금은 주로 집 앞 천변을 걷거나, 가까운 공원에 가서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라도 하고 온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집을 나서면 일단은 머리를 식힌다. 천변에 동동 떠다니는 오리도 보고, 애완견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도 본다. 바깥 공기도 마시고, 햇볕도 쬔다. 집 밖의 모든 사물과 풍경이 머릿속을 리프레싱(refreshing)시킨다. 그렇게 걷다보면, 잠시 후 머리가 자기 스스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방금 쓰다 말았던 문장들, 논리들을 머리가 복기한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검토한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것을 다리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걸으면 웬만한 문제들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걸어도 좋은 생각이 안 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런대로 다시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 다시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쓰다 만 글을 다시 들여다본다. 작가들에게 책상은 격전지다. 책상을 떠나 걷는 것은 전장에서 잠시 후퇴해 전장을 내려다보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전장을 내려다보면, 어떻게 공략해야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지가 보인다.

작가의 작업은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이 일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래 일해도 지겹거나 별로 지치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노동과 다른 점이다. (이것은 글쓰기만의 특징은 아니다. 문학예술 전반의 특징이다.) 겉보기에는 작가의 휴식도 다른 사람의 휴식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정신활동의 측면으로 파고 들어가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작가들의 휴식은 재충전을 넘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생산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

작가들은 쉴 때 자신과 세계 전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글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쉴 때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지는 것이 작가들만의 일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일반인들 역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그것을 자신의 생활에 일부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글쟁이들처럼 그 생각들을 모두 사용하기는 힘들다. 사용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작가만큼 생각한 것을 거의 전부 자신의 일과 꼼꼼히 결합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 쓸모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작가들은 생각한 것을 거의 대부분 써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더욱 더 열심히 생각하고 탐구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글 쓰는 일 자체의 속성에서 파생된 결과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있어야 하고, 글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과 세상을 탐구할 수밖에 없다. 정열적으로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지식을 접하게 되고, 생각도 많아진다. 하나의 지식, 생각, 관심은 또 다른 지식, 관심, 생각으로 확산된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왕성한 정신활동이 주는 충만감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보고 듣는 것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느낌, 그냥 생각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사물과 사건들이 섬세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살게 된다. 일상적으로 왕성하게 전개되는 정신활동은 단지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주체적으로, 충실하게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만족감으로 이어진다.

흔히 여가는 에너지 재충전의 의미가 크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노동이 소모적이면 여가도 소모적이 될 때가 많다. 사람을 소진시키는 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여가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려고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향락적이고 자극적인 여가를 즐기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의 여가가 많이들 그렇다. 그러나 일이 생산적이면, 여가도 생산적이다. 쉬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다.





박민영 저술가, 문화평론가

인문사회과학서 쓰는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이다. 불러주는 데 있으면 가서 강의하고, 집에 돌아오면 책 읽고 글 쓴다. 글 쓸 때 가장 염두하는 것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이 나 자신과 세계를 개선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다. 나는 내가 글쟁이가 될 줄 몰랐다. 또한 한겨레에서 근 10여년을 강의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 동안 알게 된 것을 성실히 가르치려 할 뿐이다.
저서로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 <인문내공> <인문학, 세상을 읽다> 등이 있다.